대한제국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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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2333BC 부터 팔선(八仙) 발해의 마지막서 탈탈 몽골 서 고려시대 아리랑 도교...

도교의 보문은 팔선의 능력을 상징하는 여덟 가지 기물의 무늬이다. ... 암팔선 함께 포함하고 있다. .... 통일신라시대의 최치원 영정, 고려 말의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영정, 조선시대의 ...

고려 도교사상 - 위키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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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2, 2014 - 八仙思想 고려 전기에 있었던 도 8선(八仙) 혹은 8성(八聖) 숭배사상. ...의 명당자리라고 하였고, 신라 풍수가(風水家) 팔원(八元)도 송악을 팔선이 머물 땅으로 보았다 한다.

고려 전기에 있었던 도 8선(八仙) 혹은 8성(八聖) 숭배사상. ...의 명당자리라고 하였고, 신라 풍수가(風水家) 팔원(八元)도 송악을 팔선이 머물 땅으로 보았다 한다.

고려의 팔선은 중국의 팔선 지리 > 평안남도( 平安南道) > 덕천시(德川市): 생산하고 있다.


고려의 팔선은 중국의 팔선과는 달리 불교의 부처보살우바이 등이 도교의 ... 자주 다루어진 화제로는 8명의 선인(仙人)을 표현한 팔선 도(八仙圖),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 ...

고려의 팔선 - ... 선주처(八仙住處)의 명당자리라고 하였고, 신라의 풍수가(風水家) 팔원(八元)도 송악을 팔선 ...

바다를 건너고 있는 중국의 팔선: 고려의 팔선은 중국의 팔선 송악을 팔선이 머물 땅으로 보았다 한다.


송나라의 팔선(八仙) 이 일본에서는 유일한 태양의 天照大神(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을 중심으로 남성적인 큰 뱀으로 표현된 팔기대사(八岐大蛇)로 표현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팔선도>가 두보에 의하여 <음중팔선가> 시로 표현된 이래 여덟 술 신선 그림인 <음중팔선도>가 그려져 왔던 전통이 있듯이 팔기대사(八岐大蛇) 신화에는 술독 여덟 개가 등장하여 여덟 마리 큰 뱀을 잠들게 했다는 내용은 '음중팔선도'의 또 다른 버젼일 수 있다.



그것은 신라의 팔선 사상이 오히려 그 시대의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처용가>의 동해 용왕과 그 일곱 아들 이야기에서도 추측이 가능하다. 신선은 술과 관련이 있으며 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 '죽림칠현'이라는 것도 사실은 신라에서 건너간 선도성모 어머니 여신 또는 아리영 신선이 즉 팔선 가운데 '히라영' 신선이라고도 하는 하선고 신선을 뺀 나머지 '일곱 남자(아들) 신선'을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 팔선의 팔보에서 나온 칠보와 그 신선을 의미하는 칠현은 남자 일곱명으로서 생략된 여신선이 암시되어 있는 죽림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 향가 <처용가>에서 신라 헌강왕이 만난 동해 여신 용왕과 그 일곱 아들의 '팔선(八仙) '에서 바리공주 신화에서 바리공주와 그녀의 일곱아들은 같은 구조를 가지는 것만큼 송나라의 팔선과 일본의 팔기대사는 결국 아리영 - 하리랑(何二娘)에서 오늘날 우리 민요 <아리랑>에 남아져 있는 것이다. (05/28/11 오두 김성규 odunamsan@hanmail.net )



팔선(八仙)

팔선도 네폭병풍 / 촬영 오두



송나라의 팔선(八仙) 이 일본에서는 유일한 태양의 天照大神(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을 중심으로 남성적인 큰 뱀으로 표현된 팔기대사(八岐大蛇)로 표현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팔선도>가 두보에 의하여 <음중팔선가> 시로 표현된 이래 여덟 술 신선 그림인 <음중팔선도>가 그려져 왔던 전통이 있듯이 팔기대사(八岐大蛇) 신화에는 술독 여덟 개가 등장하여 여덟 마리 큰 뱀을 잠들게 했다는 내용은 '음중팔선도'의 또 다른 버젼일 수 있다.



그것은 신라의 팔선 사상이 오히려 그 시대의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처용가>의 동해 용왕과 그 일곱 아들 이야기에서도 추측이 가능하다. 신선은 술과 관련이 있으며 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 '죽림칠현'이라는 것도 사실은 신라에서 건너간 선도성모 어머니 여신 또는 아리영 신선이 즉 팔선 가운데 '히라영' 신선이라고도 하는 하선고 신선을 뺀 나머지 '일곱 남자(아들) 신선'을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 팔선의 팔보에서 나온 칠보와 그 신선을 의미하는 칠현은 남자 일곱명으로서 생략된 여신선이 암시되어 있는 죽림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 왕후들의 제의적 관으로 사용되었다는 신라 금관.

사슴뿔 형상이 구성되어 있다.



더더욱 하선고는 도사를 만난 나이가 13세라는 것이다. 하선고가 13세에 도사를 만나 그 도사가 준 선도를 먹고 나서는 마시고 먹지 않아도 몸이 날을듯이 가볍고 세상사를 내다보는 여신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十三岁



하선고의 '13세'란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이 육촌장이 받들어 신라 시조로서 왕위에 오른 나이이다. <삼국유사>의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이 13세에 왕이 되는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營宮室於南山西麓(今昌林寺.) 奉養二聖兒. 男以卵生. 卵如瓠. 鄕人以瓠爲朴. 故因姓朴. 女以所出井名名之. 二聖年至十三歲



남산(南山) 서쪽 기슭(지금의 창림사 昌林寺)에 궁실(宮室)을 세우고 이들 두 성스러운 어린이를 모셔다가 길렀다. 남자아이는 알에서 낳았고, 그 알의 모양이 박[匏]과 같았는데, 향인(鄕人)들은 박을 '박(朴)'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성(姓)을 박(朴)이라고 했다. 또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으로 이름을 삼았다. 두 성인(聖人)은 13세가 되자 오봉(五鳳) 원년(元年) 갑자(甲子; 전 57)에, 남자는 왕이 되어 이내 그 여자로 왕후(王后)를 삼았다.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 지금 풍속에 경京을 서벌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이라 하고, 혹은 사라(斯羅)·사로(斯盧)라고도 했다. 처음에 왕이 계정(鷄井)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혹 나라 이름을 계림국(鷄林國)이라고도 했다. 이것은 계룡(鷄龍)이 상서(祥瑞)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 편.



신선 그림은 본래 바다와 함께 그려졌다. 신라의 항해술과 함께 신라인들의 초기 무속적인 바다 여신 숭배는 충분히 당나라 바닷가로 건너갔을 개연성이 높다. 중국의 팔선도는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로 그려지며 그 중심에 여신선인 하선고 중심이다. 그 하선고는 본래 신라시조 아리영 부인 음운과 같은 '하리영'이었다.



일곱 남자 신선들과 하리영 여신과의 관계는 <처용가>에서 말하는 동해 용왕이 여신이며 고래해신일 때 그 일곱 아들을 합해 팔선이 된다. 그 중심에 고래해신은 여신이며 유일한 여 신선으로 송나라에서 일곱 남자 신선들 가운데 신라의 '하리랑(何二娘)' 즉 '하선고(何仙姑)' 여신선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뿔 달린 사슴을 올라탄 하선고 여신선

팔선도

팔선도 상아 조각.

하선고 여신선이 노를 저어 나머지 남자 신선들을 '아들들'로 태우고 간다는 의미다.

하선고 여신선은 일곱신선들을 배에 잉태한 어머니라는 뜻이다.



중국의 하선고(하리랑) 여신선이 신라 시조 아리영 신선의 영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하선고 여신선 숭배가 강하게 남아 있는 꽝뚱 지역의《续通考》에 따르면 "출생시에 머리에 여섯 가닥의 빛나는 털이 나 있었다(出生时头顶出现六道毫光)"는 것이다. 이는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이 태어날 때 육촌장이 왕으로 모시는 과정의 여섯 촌장과 연관된 의미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팔선도 그림에서 하선고 여신선을 그릴 때에 사슴의 등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도 신라의 왕비들의 금관에 사슴 뿔의 형상과 연관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팔선과해도(八仙过海繪圖)

*바다를 건너는 팔선도.

중앙의 여신선인 하선고 신선 왼쪽에

표현되었지만



바다를 건너는 팔선과해도(八仙过海繪圖)

팔선과해도(八仙过海繪圖)

유일한 여신선인 하선고 여신은 신라에서 건너간 아리영(알영) 신선으로

송나라 기록에서는 '하리영(何二娘)'이라고 했다.



암팔선(暗八仙)'이라고도 하는 팔보(八宝)는 팔선들 각각의 상징물을 말한다. 해당 신선과 그 상징 보물은 다음과 같이 신라의 고래토템 신선사상에 대입하여 풀이할 수 있다.



미역을 닮은 신선 띠옷을 입고 연꽃(荷花) 또는 바다의 배에서는 팔선 중에 노를 젓는 하선고(何仙姑) 여신선, 고래 꼬리 지느러미를 닮은





이러한 팔선과 팔보의 구분은 명나라 이전에는 일치하지 않았다. 한대 팔선과 당대 팔선, 송나라 원나라 때 팔선은 서로 달랐다. 명나라 때의 오원태(吴元泰)의《八仙出处东游记》에서 처음으로 위의 여덞 신선인 팔선이 정착된 이름들이다.





아리랑에 연관한 하리랑 신선인 하선고 신선에 대해서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문헌들에는 이에 대하여 다양한 자료들이 있다.


何仙姑是八仙中惟一的女性,有关其身世说法不一。一说她是唐朝人。宋初《太平广记》引《广异记》称有“何二娘”者,是位以织鞋为业的农妇,后因嫌家居太闷,游于罗浮山,在山寺中住下,经常采集山果供众寺僧充斋。一次,远在四百里外的循州山寺僧来罗浮山寺.

하선고 신선은 팔선 중에 유일하게 여성이다. 그에 대한 세상의 여러 설들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일설에 의하면 하선고 신선은 당나라 때 인물이라고 한다. 송나라 초기의 기록인 《广异记》를 인용한《太平广记》에서“아리랑(何二娘)”이라고 칭했다. 그녀는 신발을 짜는 농부일을 했다. 나중에 집에서 머무는 것을 크게 답답하고 싫어하여 라부산(羅浮山)으로 떠났다. 라부산 산사에 머물면서 산 속의 열매를 따다가 산사의 모든 승려들에게 공양했다.







하선고 선녀가 "라부산(羅浮山)"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 것은 어딘가 신라의 바다 섬에 이어진 스토리일 수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하선고 선녀의 출신에 대해서 제대로 일치하는 설이 없다. 중국의 기록들에는 때로 하선고 신선이 당나라 측측무후 때의 광동 사람(



그녀가 태어날 때 머리 정수리에 여섯가닥의 머리 털이 나서 빛이 났다고 하며 13세에 산중의 도사를 만나 도사가 주는 선도 복숭아를 먹었는데 그로부터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지 않고 몸은 가볍게 날아 오를 것 같이 되어 신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하선고 신선은 북송의 영주 영능 사람(



'하리랑(何二娘)'이라고 한 것은 알영부인이 박혁거세와 함께 이성(二聖)이라고 불렸던 것의 영향으로 이(二)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알영이 태어난 우물을 아리영정이라고 한 것은 우물에서 '용알뜨기' 풍속에서 보여주듯이 태양이나 달이 우물에 비친 것을 뜨는 것은 많은 문헌들에서 시적으로도 신화적으로도 표현해주고 있다. 시조신화들에서 우물은 그래서 많이 등장한다.



그 우물은 남성보다 여성의 우물로 강조되었다. 아리영정과 함께 박혁거세 탄생의 나정(蘿井), 김유신 장군 부인의 우물을 의미하는 재매정(財買井), 금성정(金星井), 요내정(遙乃井), 분황사의 우물 등의 용이 오간다는 신라의 우물들이 있고 고려시대의 왕건이 마셨다는 왕정(王井), 조선시대 왕들이 사용하던 마니(摩尼), 유리(琉璃), 옥정(玉井) 등이 있다.



아리영의 아리는 알에 연관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 알은 태어나지 않으면 가슴 속에서 한이 되는 옹아리가 된다. 산에서 메아리가 울리는 것도 산고개 마루의 한을 가진 뫼+아리가 메아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리랑이 메아리에서 나왔다는 설은 아리영 고래 설과 합류되는 것이다.



이 글을 바로 이해하는 첩경은 중국 사대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야 하는 일이다. 의외로 신라문화가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물론 당 송 시대에 종교적으로 과학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는 일이다. 송대(宋代) 女 신선 '하리랑(何二娘)'은 중국 팔선(八仙) 가운데 유일한 여신선인 하선고(何仙姑)의 다른 표현이다.



신라 신선이었던 '하리랑(何二娘)'을 그대로 표현하기 싫어서 '하선고(何仙姑)'로 개명시킨 것이다. 일본이 신라명신이라는 칭호를 그들 지역 이름을 넣은 ㅇㅇ명신으로 개명하거나 선도성모 동신성모를 천조대신으로 바꾼 것과 같은 것이다. 과연 일본에서는 황실의 여신으로 존재한 신라시조 여신이 송나라에서는 여덟 신선 가운데 유일한 여신으로 하선고(何仙姑) 즉 신라 여신 '하리랑(何二娘)'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하선고 여신선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선녀상의 원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팔선도(八仙图)